우리 아이가 미운 네살을 지나 뭘 좀 아는 나이, 다섯살이 되었다.
작년에는 터무니없이 떼를 쓰고 고집을 부렸다면 올해는 뭔가 좀 다르다.
말로 잘 설득하면 들어주기도 하고, 서운하고 속상하지만 마지못해 체념하기도 한다.
혹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조금쯤 알게 된걸까?
세상의 쓴맛을 살짝 맛본 다섯살 형아는 조금씩 참고 견디기를 배우고 있다.
그래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속상하고 서글플 때, 알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이 치솟을 때
아이 마음을 풀어주는 그림책이 있다.
아이는 이 그림책을 다 읽고나면 속시원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다.
눈물바다
서현 글 그림
사계절 / 2009년 11월 2일 출간
48쪽 / 214 * 233 mm
재미있는 캐릭터와 만화 그림체가 돋보인다
《눈물바다》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참신하고 사랑스러워서 반해버렸다. 마침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고 있던 때라 서현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서 엄청 많이 연락하고 기다렸다. 당시에도 워낙 인지도가 높고 바쁘셔서 섭외가 쉽지 않았다.
서현 작가님은 이 그림책 만큼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이다. 어떻게 눈물과 바다를 연결시킬 수 있었냐고 물었을 때 덤덤하게, 어릴 때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작가님을 치켜세우고 칭찬을 해도 수줍은 미소만 보이며 손사레를 치곤 했다. 《눈물바다》 뿐 아니라 다른 그림책에도 작가님의 엉뚱한 상상과 기발한 표현이 여지없이 펼쳐진다. 본디 맑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그림책 작가라는 직업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엄마가 되어 내 책장 속의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보고 있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엄마가 사모은 그림책을 좋아해주면 감격스럽기까지하다. 책장을 공유하는 영혼의 단짝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서 혼자 김칫국을 실컷 마시고 있다.
그림책 속 주인공은 하루 종일 한숨 나고, 기분 나쁘고,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겪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있다. 혼자 방으로 들어가 엄마아빠의 싸우는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딱딱한 텍스트로 옮기고 나니 되게 심각하고 답답하기만 한데, 그림책은 이 와중에도 유머러스하고, 깜찍하다.
엄마! 공룡이다. 이빨이 뾰족해.
공룡들이 싸우고 있네. 누구야?
엄마랑 아빠. 근데 왜 공룡이야?
공룡처럼 싸우나 봐. (식은땀...)
엄마 아빠가 싸우는 장면에서는 얼마나 뜨끔하던지... 그러면 정말 안되는데, 그 각오와 다짐이 무색하게 몇번 아이 앞에서 크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느낄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아마 두 마리의 공룡들을 보는 것 만큼이나 큰 충격은 아니었을지. 10년 전 이 그림책을 볼 때는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엄마 아빠의 싸움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내 아이가 봤을 우리 부부의 싸움이 떠올라 너무 창피하고 미안했다. 아이가 엄마아빠 싸운 얘기를 할까봐 눈치를 계속 살폈다. 다행히 말은 하지 않았는데 기억을 못하는건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이 하루종일 꾹꾹 눌러담은 감정이 터져버려 눈물을 흘리다가 눈물바다가 된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 감상평에 적곤 하는 그 눈물바다가 그림책에서 정말로 구현된다. 눈물바다에 아빠도 엄마도 선생님도 짝꿍도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이 장면에서 크게 통쾌함을 느끼는 것 같다. 아이는 소리내서 깔깔깔 웃는다.
엄마, 여기 봐. 수영해.
선녀가 목욕도 하는데?
북극곰도 있어!
눈물바다에 빠진 깨알같은 캐릭터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가가 아이 머릿속 상상의 세계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하다. 이런 유머러스한 표현이라니~ 볼때마다 웃음이 난다. 아이도 몹시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 그림책은 장면마다 글이 한 두 문장 정도밖에 안 된다. 그림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줘서 독자가 그림속으로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이후 주인공은 눈물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올린다. 그리고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이제 시원하다고 말한다. 실컷 울고 나서 해소된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마지막 장면까지 감탄이다. 벌써 10년째 내가 팬심으로 읽고 있는 그림책을 아이가 매번 꺼내들고 읽어달라고 하니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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